본문 바로가기

언론기사

기독교적 세계관이 무엇인지 명징하게 보여준 프랜시스 쉐퍼 - 오직, 성경으로 살아가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생명의말씀사)


중세의 핵심은 ‘교회 권력과 국가 권력’의 긴장이다. 모든 중세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교회는 세속 권력을 지배했다. 쉐퍼는 중세의 왜곡이 세속적 권력의 지배뿐 아니라 건축과 철학 속에서 교묘하게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특히 13세기 위대한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계시와 인간 이성을 동동한 자리에 두기 시작했다(59쪽)’고 정확하게 지적한다.

중세를 마무리하면서 쉐퍼는 뒤이어 일어날 르네상스 운동에 중세는 두 가지를 제공했다고 말한다. 하나는 ‘점차 각성된 중세의 문화적 사상과 경건’이며, 다른 하나는 인본주의가 개입하여 성경과 초대 교회의 교훈에 대한 왜곡이 증가한 것이다.

즉 하나님 중심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자율적이고 사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기 시작(74)한 것이다. 이제 르네상스 운동은 인간을 중심을 두고 모든 것을 그려나갈 것이다.

"종교개혁에서 근대까지"
3장에서는 르네상스를 다룬다. 4장과 5장은 종교개혁을 다루며, 6장은 ‘계몽주의’를, 7장은 ‘근대 과학의 발흥’을 살핀다. 르네상스 운동은 중세에 속한 것이지만 정신은 근대적 인본주의다.

쉐퍼는 르네상스 운동의 핵심을 자연에 둔다. 자연은 곧 사실이며, 실제다. 중세는 상징의 시대였다. 르네상스 운동은 자연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쉐퍼는 치마부에의 제자였던 조토 디 본도네에게서 미술의 근본적인 변화(80)가 일어났다고 본다.

이것은 정확한 분석이며, 미술사가들도 동의한다. 조토의 미술은 혁명적이다. 다양한 변화를 가져왔지만 핵심은 ‘자연’이다. 단테 역시 ‘조토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글을 썼다(82쪽).’ 쉐퍼는 르네상스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인간’이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고 설파(說破)한다.

“많은 르네상스 인본주의자들이 마음에 품고 있었던 인간의 자율성은 전적으로 비기독교적 그리스 로마 세계에 의존한 것이라는 사실이 점차 분명해졌다. 그래서 르네상스 인본주의는 현대 인본주의, 즉 인간은 그 자신이 척도이며 인간은 자율적이며 전적으로 독립적이라는 신념에 뿌리내리고 있는 신념 체계를 향하여 꾸준히 발전하였다(85쪽).”

그럼 종교개혁은 어떨까? 르네상스 운동의 핵심은 분명 자연과 인간이지만 그러기 위해 그들은 고대로 역주행했다. 고대의 고전 연구는 궁극적으로 그리스 로마가 가진 ‘인간 중심’의 기반을 되찾아 오게 한다.

종교개혁은 바로 이 점에서 르네상스 운동과 연장선상에 있다.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는 탈권위적이며, 반종교적인 의미를 갖지만 문서에 대한 비평이란 수단을 사용한다. 종교개혁은 정확하게 이곳에서 르네상스와 접점(接點)한다. 다른 점은 인간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성경과 초대교회로 돌아간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로렌초 발라의 불가지론은 거부했지만, 그의 언어 연구는 흔쾌히 배웠다. 그러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전통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으로 돌아가지 않고 성경과 초대 교회의 순수한 기독교로 돌아갔다(115).

쉐퍼는 종교개혁을 시대의 정석으로 생각한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자연에 대한 바른 인식, 신격화된 헛된 인본주의에서 피조물로서의 바른 사람으로, 왜곡된 권위와 세속적 가치관에서 오직 성경에 근거한 믿음으로 되돌아간 시기다. ‘사람들은 자신의 위대함과 잔인함을 동시에 이해할 수 있었다’(122쪽)고 정의한다.

비록 모순이 있고, 완전하지 않지만 종교개혁 시기는 자연과 인간을 계시의 조명을 받아 바르게 해석했다. 쉐퍼는 렘브란트에게서 미술의 모범을 발견한다. 쉐퍼가 판단하기에 렘브란트는 ‘자연을 이상화하지도 않고 그것을 손상시키지도 않았다.’(138쪽)

종교개혁 시대가 지나면, 유럽은 계몽주의 시대가 시작된다. 불행하게도 계몽주의 시대는 ‘종교개혁에 대한 완전히 반정립(171쪽)’ 시대였다. 다시 이성과 인간이 고개를 쳐든 것이다. 계몽주의자들은 다시 ‘기독교 이전의 고대로 눈을 돌렸다(175쪽).’

그러나 슬프게 이들의 기반은 허약하고, 잔인한 것이었다. 쉐퍼는 계몽시대에 일어난 혁명을 살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는가를 나열한다. 특히 공산주의 출현은 프랑스 혁명을 능가하는 독재와 살인이 있었음을 주목한다.

궁극적으로 ‘인본주의는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를 말할 수 있는 궁극적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181쪽)’는 점이다.

근대 과학을 설명하면서 몇 가지 생소한 의견을 제시한다. 그 중 하나가 과학혁명은 종교개혁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역사상 동시에 발생했다(188쪽)’는 점이다. 우리는 그동안 종교개혁을 통해 과혁 혁명이 탄력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쉐퍼는 ‘동시’에 일어났다고 말한다.

최근 번역 출간된 로드니 스타크의 <우리는 종교개혁을 오해했다>(헤르몬)에서도 그 부분을 역사적 근거를 통해 제시한다. 로드니 스타크는 종교개혁 이전에 이미 근대 과학이 태동했다고 말한다.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과학은 신학에서 벗어나고 지배하게 됐다는 것이다.

"현대, 붕괴하는 철학과 과학"
8장부터 12장까지는 근대 후기부터 현대까지의 철학과 미술 등의 다양한 주제들을 다룬다. 근대 이후 철학과 미술은 ‘신비주의’의 범주에 갇힌다. 쉐퍼의 천재성이 드러나는 곳이다. 특히 키에르케고르의 ‘도약’에 대한 해석은 차갑고 예리하다.

필자는 키에르케고르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쉐퍼의 주장에 온전히 동의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실존주의의 포문을 연 키에르케고르의 사상은 도래한 현대 철학의 붕괴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존주의 핵심은 신과 인간의 ‘단절’에 있기 때문이다.

단절은 불가피하게 ‘도약’을 요구하고, 도약은 절망이라는 무신론적 후기 실존주의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실존주의와 신비주의는 20세기 시작된 동양 신비주의의 서구로의 유입, 그리고 신화에 대한 재해석으로 이어가도록 추동(推動)한다. 결국 니체는 ‘하나님은 죽었다(265쪽)’고 외친다. 감동적이게도, 쉐퍼는 니체의 부정을 ‘신에 대한 갈망’으로 재해석한다.

“니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에 파묻혀 있었지만 현대인의 긴장과 종말을 알고 있었다. 인격적인 하나님이 없으면 모든 것은 죽은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참으로 인간이므로, 침묵하지 않고 말씀하셨던 무한한 인격적인 하나님의 존재에서 그리고 영원까지 계속되는 개인의 생명의 존재에서 발견될 수 있는 의미를 향해 울부짖는다(266쪽).”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제 남은 것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마지막 13장에서 그는 ‘대안’이란 제목으로 서술한다. 쉐퍼는 두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강요된 질서를 따르든지, 아니면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를 인정하는 것’(380쪽)이다.

다시 1장으로 돌아가 ‘기반’이란 단어를 가져오자. 쉐퍼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갖는 ‘기반’은 든든한가 하는 점이다. 세상을 바라보고, 삶의 의미를 더해주는 기반은 진정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묻는다.

쉐퍼의 주장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더 나아가 종교개혁자들이 갈구하고 되돌아갔던 다섯 가지 기치로.

다시 읽는 쉐퍼는 필자에게 새로운 각성을 주었다. 모호하고 희미한 기독교적 세계관이 무엇인지 명징하게 보여주었다. 또한 시대적 흐름을 비껴나가지 못한 아쉬움은 남지만, 기독교 세계관이 갖는 든든함을 재고(再考)하도록 이끌었다.

특히 노예제도와 인종에 대한 편견, 부에 대한 분배에 관한 부분은 새로웠다. 교회가 대(對) 사회적 행동을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점을 비판한다.

쉐퍼는 분명하게 ‘그 교회들이 분명하고 용기 있게 외쳤더라면, 당시의 상황을 바꿀 수도 있었을 것(162쪽)’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쉐퍼는 막무가내식의 보수주의자가 아니라, 철저히 성경에 천착하고 뿌리내리는 성경의 사람이다.

쉐퍼는 천재다. 아니 성경을 사랑했던 믿음의 사람이다.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이 아니고서는 인간은 바른 삶의 ‘기반’을 가질 수 없음을 명백히 선언한다. 요약 형식의 통해 쉐퍼의 주장을 일부 가져왔지만, 혹여나 왜곡이 없는지 걱정스럽다.

기독교인이라면, 특별히 기독교적 세계관이 무엇인가 알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대작이다. 강력 추천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쉐퍼의 마음으로 다섯 가지 솔라(Sola)를 외쳐보자.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

정현욱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에레츠교회

 

출처 :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18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