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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추천 양육 도서] 경건을 열망하라, 토마스 왓슨, 생명의말씀사

 

 

경건을 열망하라, 토마스 왓슨, 생명의말씀사


그렇다면 영적인 기도란 어떤 것인가?


첫째, 지식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영적인 기도다.
율법에 따르면 아론이 제단에 향을 사를 때에는 등불을 켜야 했다(출 30:7). 향은 기도를 상징한다. 그리고 등 불을 밝히는 것은 지식을 상징하는 것이다. 즉 기도의 향이 타오를 때 지식의 등불도 켜져야 한다. “나는 지식을 가지고 기도하며”(고전 14:15, 개역개정 성경에는 “내가 마음으로 기도하며”로 되어 있음-역주). 우리는 하나님의 위엄과 거룩하심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깊은 경외심을 느껴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 정확히 들어맞고 적합한 간구를 드려야 한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전 5:2). 하나님은 눈 먼 짐승을 제물로 받지 않으신다(말 1:8). 그런데 우리가 분별력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어떻게 애정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겠는가? 가톨릭교도들은 알지 못하는 언어로 기도한다.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에게 말씀하신 것같이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마 20:22)라고 하실 것이다. 어떻게 기도하는지 모르는 자는 언제 기도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둘째, 영적인 기도는 마음과 영으로 드리는 기도다.
거기에는 말뿐 아니라 소원이 있다. 기도 중에 “주여, 나의 마음이 기도하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뛰어난 기도다. 한나는 “마음으로 기도했다”(삼상 1:13, 개역개정 성경에는 “속으로 말하매”로 되어 있음-역주). 트럼펫의 소리는 안에서부터 나오고 뛰어난 기도의 음악은 마음속에서 나온다. 즉 마음이 수반되지 않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

셋째, 영적인 기도는 간절한 기도다.
“간절한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약 5:16, 개역개정 성경에는 “의인의 간구”로 되어 있음-역주). 마음은 시계의 태엽처럼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애정을 실어 나르고, 간절함은 기도의 날개가 되어 기도가 하늘로 날아 올라가게 한다. 기도는 한숨과 탄식으로도 표현된다(롬 8:26). 그리고 하나님은 성령의 은사보다 성령의 탄식을 더 좋아하신다. 기도는 “씨름”(창32:24)이며 “심정을 통한 것”(삼상 1:15)이다. 또한 기도는 향으로도 비유된다(시 141:2). 향에 불을 붙이지 않으면 좋은 향기가 나지 않는 것처럼, 열심이 없는 기도는 불을 붙이지 않은 향과 같다. 그리스도는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셨다(히 5:7). 눈물의 기도는 효과가 있다. 기도 중에 마음에 불이 붙으면, 그리스도인은 마치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같이 올라간다.

넷째, 영적인 기도는 상한 심령에서 나오는 기도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시 51:17). 향은 두드려야 했는데, 이것은 기도 중에 마음이 상한 것을 상징한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유창한 언변이 아닌 부드러운 마음이다. “나는 남들처럼 기도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다. 이는 모세가 “나는 본래 말을 잘하지 못하는 자니이다”(출 4:10)라고 했던 것과 같다. 당신은 흐느끼고 한숨 쉴 수 있는가? 당신의 영혼이 눈에서 눈물로 녹아나는가? 하나님은 상한 심령에서 나오는 상한 표현을 받으신다. 열매는 맺지 못하지만 매우 값진 진액을 내는 나무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이와 같이 다른 사람들처럼 화려한 은사와 표현을 갖고 있지 않아도 당신이 회개하는 심령으로 눈물을 흘린다면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대단히 값진 것이다. 하나님은 그 눈물을 병에 담으신다. 야곱은 천사와 겨루어 이겼다(호 12:4).

다섯째, 영적인 기도는 믿음의 기도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마 21:22). 많은 기도가 난파하는 이유는 불신앙이라는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기 때문이다. 믿음없이 기도하는 것은 총알 없이 총을 쏘는 것이다. 일단 믿음의 손으로 기도를 붙들면 우리는 하나님께 다가가게 된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마 8:2)라고 한 한센병자처럼 기도 중에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여호와의 …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신다(사 59:1)는 생각을 품는다면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켜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것이라”(히 3:19)는 말은 기도에 적용될 수 있다.

여섯째, 영적인 기도는 거룩한 기도다.
“그러므로 …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딤전 2:8). 기도는 거룩한 마음의 제단 위에 드려져야 한다. 내재하고 있는 죄는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 하나님의 귀를 막아 버린다. 기도하는 입도 틀어막는다. 그것은 강도가 나그네에게 하는 짓(말하지 못하도록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과 같다. 이처럼 죄는 기도에 해를 끼치고 손실을 준다. 악한 자의 기도는 흑사병에 걸린 것과 같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께서 다가가시겠는가? 자석에 마늘을 문지르면 자력을 잃는다. 마찬가지로 기도가 죄로 더럽혀지면 그 가치를 잃는다.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 66:18).
죄를 짓지 않기 위해 기도한 뒤에 기도를 막는 죄를 짓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영적인 기도는 포도주의 에탄올 성분처럼 정제되어 죄의 앙금과 찌꺼기가 제거되어야 한다.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말 3:3). 마음이 거룩하면 그 마음의 제단이 제물을 거룩하게 한다.

일곱째, 영적인 기도는 겸손한 기도다.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시 10:17). 기도는 자비를 구하는 것으로 겸손이 필요한 일이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 우리가 하나님께 다가갈 때, 그분의 헤아릴 수 없는 영광은 우리를 소스라치게 하고 거룩한 놀라움까지 느끼게 한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스 9:6). 하찮은 무용지물 같은 인간이 자신의 창조주 앞에 엎드리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이다.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창18:27). 마음을 낮추면 낮출수록 기도는 점점 더 높이 올라가게 된다.

여덟째, 영적인 기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는 것은 기도할 때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중보를 바라고 신뢰하면서 기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식이 아버지의 권리에 근거하여 유산을 요구하는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비를 구한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그것을 자신의 피로 값 주고 사셨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정말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한다. 웃시야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가 제사장 없이 분향을 올리려 하자 하나님께서 노하시고 그의 이마에 한센병이 발하게 하셨다(대하 26:16-19). 마찬가지로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제사장 없이 분향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겠는가?
아홉째, 영적인 기도는 기도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드리는 기도다.
악한 자도 기도할 수 있지만 기도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그가 어찌 전능자를 기뻐하겠느냐”(욥 27:10). 경건한 사람은 기쁨의 날개를 타고 다닌다. 그에게는 기도할 때보다 더 좋은 순간이 없다. 두려움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불타올라서 기도한다. “내가 …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사” 56:7).

열째, 영적인 기도는 영적인 목적을 갖고 드리는 기도다.
영적인 기도와 육적인 욕망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위선자의 목적은 세속적이고 육적이다. 위선자는 기도할 때 곁눈질을 한다. 그를 기도하게 하는 것은 영적인 필요가 아니라 정욕이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 4:3). 죄인은 은혜보다 물질을 위해 기도한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청승맞게 부르짖는 것으로 아신다. “(저희가)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으며 곡식과 새 포도주로 말미암아 모이며”(호 7:14). “내게 오직 부요함을 달라”(오비디우스[Ovidius]). 좋은 목적이 결여된 기도에는 좋은 응답이 오지 않는다. 경건한 사람은 영적인 목적을 가지고 기도한다. 그는 상인이 자기의 상선을 보내듯 기도를 보내며, 마침내 영적 축복이라는 큰 이익을 얻는다. 그가 기도할 때 의도하는 것은 그의 마음이 더 경건해지고, 하나님과 보다 더 친밀하게 교제하는 것이다. 경건한 사람은 은혜라는 비축품을 더 많이 쌓기 위해 기도에 힘쓴다.

열한째, 영적인 기도에는 주어진 수단을 이용하는 일이 따른다.
즉 기도만큼 수고도 있어야 한다. 히스기야 왕은 병들었을 때 낫게해 달라고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한 뭉치 무화과를 가져다가 종처에 붙였다”(사 38:21 참조). 우리가 죄짓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유혹을 피하는 것이 이에 해당하는 경우다. 우리가 은혜를 구하여 기도하면서 충분히 기회들을 이용하는 것은 종처에 그것을 낫게 해 줄 무화과를 붙이는 것과 같다. 경건함을 위해 기도하면서 그와 관련된 수단을 소홀히 하는 것은 시계에 태엽을 감아 놓고 추를 떼어내는 것과 같다.

열둘째, 영적인 기도는 마음에 영적인 분위기를 남겨 놓는다.
그리스도인은 기도한 후 더 강건해진다. 사람들이 운동을 하여 체력을 기르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기도를 통해 죄에 대항할 더 큰 힘을 얻는다. 기도를 하고 나면 마치 그릇에 포도주를 부었을 때 그 향이 그릇에 배어드는 것처럼 마음이 경건한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은 직후에 모세의 얼굴이 빛났다. 이와 같이 기도의 산에 갔다 오면 우리의 은혜가 빛나고 우리의 삶이 빛난다. 이것이 곧 경건한 사람의 표시다. 경건한 사람은 성령 안에서 기도한다. 이것이 올바르게 기도하는 법이다. 기도의 은사는 취사용 불처럼 평범하다. 그러나 영적인 기도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처럼 훨씬 더 위엄 있고 탁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