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을 내라
신앙에 왜 그토록 열심이 필요한가? 신중함과는 어떤 상관이 있는가?
신중함은 열심을 지도하지만, 그것이 열심을 파괴하지는 않는다.
시각이 필수적인 것이라고 해서 몸에 열기가 필요 없는 것이 아니다.
즉 신중함이 신앙의 눈이라면, 열심은 마음에 해당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심을 갖지 않는 자들은 경건함에 문외한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무시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예배가 더럽혀지는 것을 보면서도
마음에 전혀 동요를 느끼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둔하고, 미적지근하며, 세상 것에 열심을 내면서
하늘의 것들을 위해서는 열심을 내지 않는가!
그들은 자기 일에는 열을 내면서 하나님의 일에는 냉담하다.
주님은 미지근한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을 가장 싫어하신다.
나는 주님이 그들에게 진절머리를 내신다고 말하고 싶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계 3:15-16).
미지근한 그리스도인은 에브라임처럼 반만 구워졌다.
“그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호 7:8).
열심 없이 신앙의 겉모습만 갖는 것은 천사들이 몸을 가장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움직이지만 그 안에 생명이 없다.
이와 같이 미지근하고, 말로만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겠다.
신앙이 좋은 것이 아니라면 왜 애초에 신앙을 가졌는가?
반대로 신앙이 좋은 것이라면 왜 그처럼 미지근하게 믿고 있는가?
왜 영혼의 거룩한 열정을 더 많이 품지 않는가?
이런 사람은 푹신한 침대에 누워 천국에 가는 것은 기뻐하면서,
열심의 불수레를 타고 천국에 가는 것은 싫어한다.
하나님은 열심 없는 자를 대적하시는 데 열심이시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분 은 열심의 불이 없는 자를 위해 지옥의 불을 준비하고 계신다.
당신이 경건한 자의 대열에 들기 원한다면 열심을 내라.
신앙에 열심이 없는 것보다 신앙을 갖지 않는 것이 더 낫다.
세상 지혜를 경계하라.
이것은 루터가 염려한, 죽은 신앙이 될 수 있는 세 가지 가운데 하나다.
어떤 사람은 너무 지혜로워서 구원받지 못했다.
그들의 신중함이 그들의 열심을 소멸시킨 것이다.
나태함을 경계하라. 이것은 열심의 적이다.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
(리폼드 시리즈) 경건을 열망하라
원서명 : The Godly Man's Picture
| 토마스 왓슨 저 | 생명의말씀사 편집부 역 | 생명의말씀사|
자세히보기 : http://bit.ly/2Oj7Dn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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