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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21가지 원칙 교회 성장 DNA ③ - 리더를 교육하라'(리처드 코킨 지음 / 김성태 옮김, 생명의말씀사) 목회자료, 목회방법, 목회자필독서

 

리더를 교육하라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하나님의 일꾼이 준비되어야 한다.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행 20:17).

바울은 황급히 서두르며 가난한 유대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그리스 지역의 교회들이 헌금한 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려 했다. 그렇게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에는 새로운 사역을 위해 로마를 거쳐 스페인까지 갈 작정이었다(행 19:21; 롬 15장). 그는 말 그대로 예수쟁이였다. 그 곳에서 편히 머물며 자신이 어렵게 이룬 자리를 지킬 수 있었지만 복음 전도를 위해 또다시 항해를 시작했다.

그러나 곧장 터키의 서쪽 해안을 내려가지는 않았다. 자신이 개척하고 목양했던 곳에 있는 에베소교회를 지나쳐야 했기 때문이다(에베소 지역은 그 지역에서 복음 전도 활동의 요지였다).

아마도 바울은 에베소에 갔다가 당국에 체포되거나 교회의 환대로 일정이 지체될 것을 염려하여 그곳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행 20:16). 결국 그는 밀레도의 항구 근처에 정박하여 사람을 보내 교회 장로들을 그곳으로 오게 하였고, 기쁨에 벅찬 장로들은 밀레도에 가서 사랑하는 사도를 영접하고, 가족과 동료들의 안부를 나누었을 것이다.

장로들은 바울의 가르침을 듣기 전에 들뜬 마음을 가라앉힐 겸 식당 옥상의 그늘막 아래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하셨던 것처럼 바울 역시 자신이 떠난 후에도 복음이 계속 퍼져 나갈 수 있도록 그렇게 다음 세대의 리더들을 훈련했다.

이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건강한 복음 사역 방법이나 단체들이 대부분 한 세대에서 끝난다. 어떤 목회자들은 신실하게 사역하여 얼마 동안 열매를 맺은 뒤, 다음 세대 지도자 양성에 별 관심이 없거나 후임자를 지도하는 일을 소홀히 한다. 이런 교회는 목회자가 떠나면 점점 교세가 약해지거나 복음에서 떠나기 일쑤다.

후임자를 지도하는 것은 성경 신학이나 경건한 성품을 가르치는 것뿐 아니라, 그들에게 실질적인 의사 결정권을 주고 부적절한 리더십은 거부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추게 하는 것을 포함한다. 다음 세대를 견고하게 준비하지 않았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어떤 복음 사역도 제대로 이루어 놓았다고 말할 수 없다.

말씀을 가르치는 리더 훈련하기

바울은 왜 리더를 훈련했을까?

에베소교회에 보내는 바울의 편지에서 성경 교사는 하나님의 백성을 말씀으로 훈련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한다고 했다(엡 4:11-12). 또한 이를 통해 교회가 영적 하나 됨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숙을 이루도록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사람들이라고 설명한다(엡 4:13).

이 원칙은 런던에 있는 코미션 교회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교회를 축구 시합으로 비유해 보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를 마치 몸값 비싼 프로 선수들(사역자)이 경기하는 것(교회 사역)을 관중(성도)이 즐기며 구경하는 것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다르게 말한다.

그가 말하는 성경 교사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사람’이며 ‘성도를 온전게 하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가르치는 사역은 그리스도로부터 보냄받은 모든 자녀가 하나 됨과 성숙 안에서 성도들을 모으며, 교회를 세워 가기 위해 해야 할 사역인 것이다.

축구 비유를 계속해 보자면 선수단(섬기는 모든 자)은 사역자들만이 아니라 성도들 모두다. 이들은 주장(가르침과 모범을 통해 지도하는 장로)의 지도를 받고 훈련 매뉴얼(성경)에 따라 코치들(설교자와 소그룹 리더)에게 훈련을 받

는다. 그런 다음 경기를 뛰고(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지역 사랑), 경쟁팀(죄, 이 세상, 사탄)에 대비하고, 계속 싸워 승리할 수 있도록 유소년 아카데미를 운영(자녀들을 성경으로 양육)한다. 구경하는 관중은 믿지 않는 친구들, 가족,

그리고 직장 동료들과 지역사회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교역자팀’ 안에는 모든 신자가 포함되어야 한다(교회 내 비신자는 대예배에 참여할 수 있지만 그들이 믿음으로 드리지 못하는 찬양이나 가르침에는 참여할 수 없다. 비신자에게 사역을 맡기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결국

자신의 가짜 믿음이 스스로를 실망시키고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씀 교육이 모든 사람을 위한 훈련이라는 점에 주목하라. 바울은 이를 담임목사나 교역자들, 가능성 있는 목회자 지망생으로 제한하지 않았다. 만약 교회가 모든 성도의 사역을 통해 성장한다면 모든 성도가 말씀 교육의 유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말씀 교육을 통해 성도는 자신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역한다는 확신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사역이 ‘제자 삼기’라는 공통된 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바울은 장로들을 교육할 때 그들이 소그룹 리더, 주일학교 교사, 찬양 작곡가들을 말씀으로 교육하는 방법만을 가르치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그는 교제, 방문자 환영, 전도, 대화하기 등 비교적 덜 주목받는 일도 어떻게 말씀으로 교육할 수 있을지 가르쳤을 것이다. 마치 오케스트라가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내기 위해 그 안의 모든 악기

가 각자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처럼, 교회 내 모든 성도의 사역은 경중을 떠나 한데 모여 교회를 성장시킨다. 본질적으로 바울의 교회 성장 전략은 사람들을 말씀으로 훈련시켜서 몸 된 지체들을 세워 가는 ‘보

디빌딩’ 사역이었다. 따라서 모든 교회는 ‘훈련하는 교회’이고, 모든 성도는 ‘사역을 위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사역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훈련시키는 영적 사역을 섬겨야 한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겠다. 물론 전략적 계획 수립이나 기능적인 지원, 심지어 건물이나 미적 감각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것들도 말씀 사역을 든든히 받쳐 주는 것들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사역을 무시하는 교회들이 있는데, 이로 인해 결국 영적인 성장이 침체되기도 한다.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장로들에게 각 가정을 돌보는 역할을 부여하여 그들이 가정을 감독, 관리하게 하거나, 혹은 여러 사역팀을 발전시키는 현명하고 전략적인 방법을 통해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다

가가게 하면 여러모로 유익하다(예컨대 단순히 목회자의 수를 늘리기보다는 ‘목적 중심’의 사역팀 개발을 고려하라).

우리는 전략, 계획 수립, 각종 기능 전부가 ‘모든 민족으로 제자 삼는다’는 공통의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콜린 마샬(Colin Marshall)과 토니 페인(Tony Payne)이 쓴 『지지대와 포도나무』(The Trellis and the Vine)라는 책에서 사용한 비유로 설명해 보겠다. 교회를 지원하는 기능적 구조(지지대)는 오직 교회의 영적 성장(포도나무)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새로운 교회 관리 시스템이나 건축 계획에 사로잡혀서 말씀으로 사람들을 깊이 가르치고 교육하는 일을 무시하는 교회들이 있다.

그러면서도 왜 성도들이 성장하지 않고 봉사하기를 꺼리는지 궁금해한다.

지지대는 포도나무를 떠받쳐야 한다.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장로들의 사역에서 전략과 구조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하는 것을 지원할 때만 효과적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와 같은 말씀 사역은 하나님의 교회를 수적으로 성장시키고, 그리스도를 닮은 연합과 성숙함으로 자라게 한다.

 

장로 훈련하기

하나님은 본문을 통해 바울이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훈련한, 귀한 ‘핵심 요약 보고서’를 우리에게 알려 주신다.

‘장로’(Elder)라는 단어는 ‘연장자’(senior men)라는 뜻이다. 사도 바울은 각 교회의 영적 건강을 위해 장로를 세우게 했고, 장로가 없는 교회는 불완전한 교회로 간주하였다. 디도를 그레데섬에 남겨둔 것도 개척된 교회마다 도덕적으로 책망할 것이 없고 교리적으로 바른 장로를 임명하기 위해서였다(딛 1:5-9 참고).

장로는 하나의 팀으로 서로 다른 은사와 경험과 에너지를 합하여 교회를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둘 이상이어야 했다. 그들은 영적인 연장자였다. 성숙함에서 나오는 경험과 지혜와 권위로 교회를 이끌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가정이라는 점에서 가장에게서 나오는 묵직한 사랑의 리더십이 필요했기에 장로는 남성이어야 했다(바울은 디모데전서 2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창조 질서로 그 이유를 설명한다).

바울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 장로들은 반드시 경건함과 말씀을 가르치는 능력과 성도들을 감독할 만한 자질이 인정된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장로는 스스로 임명할 수 없으며, 다른 선임들에 의해 선출되고 공개적으로 임명받아야 했다. 이를 통해 다른 교회와 자기 교회 회중에게 하나님이 주신 권위, 즉 ‘감독자’(문자적으로 ‘장로’, 또는 ‘감독’이며 관리하고 감독하는 직무를 가졌다)와 ‘목자’(이끌고 보호하고 공급하는 자)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았다.

많은 교회가 장로회를 임명하고 있다. 명시적으로 장로회를 임명하지 않는 교회라 할지라도 장로의 역할을 하는 리더가 있다(성공회는 이를 ‘교구 목회자’, 혹은 ‘감독’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장로의 역할을 감당할 사람을 세우고 임명하는 것은 한 교회의 건강을 위해 필수적이다. 바울이 이후에 설명하려는 중대한 사역에서도 장로의 임명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교회는 장로들 없이 결코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실제로 장로회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그 문화와 전통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다. 어떤 문화에서는 장로에게 막대한 권위를 주기도 한다(특히 ‘장로’나 ‘감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교단이 그렇다. 장로 중에서도 가르치는 장로는 고용된 장로로서 목회자를 지칭한다). 이런 교회의 장로들은 주어진 권위로 교회를 적극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지만, 회중의 공감을 이끌어 내지 못하거나 스스로 자만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이와 다른 문화권의 교회들은 민주주의 리더십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는 성도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반면 리더들이 교회를 적극적으로 이끌 수 없거나 타성에 젖어 교회 안에 분쟁이 생기기 쉽다.

이상적인 대안은 앞에서 언급한 두 경우의 장점을 취하는 것이다. 즉 한편으로는 성도들이 목회자와 교회 임직원들의 경건함과 은사를 인정하게 하여 모든 의사 결정마다 일일이 회중과 의논하지 않고도 사역을 감당해 나갈 수 있도록 그들에게 충분한 자유를 허용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임명된 리더들이 성숙한 성도들의 경건한 지혜와 여러 전문성을 존중하면서, 성도들로 구성된 팀(장로들로 구성된 팀)이 리더들의 책무를 기꺼이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건강한 교회는 장로들과 직원이 적극적인 리더십을 행사하면서도 성도들과 상의해야 할 경우를 지혜롭게 분별한다.

또한 교회가 화목하게 성장할 때 조직을 편성하여 관리 기구를 만들고, 이것을 문서로 명시하는 것이 좋다. 순진하게도 그런 것이 필요하지 않을 거라고 믿다가 나중에 갈등이나 분쟁이 생긴 후에 후회하지 말고 미리 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바울은 몸된 교회를 세워 가는 보디빌딩의 첫 단추가 장로들을 교육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여기서 교육이란 단지 장로들을 훈련하는 것만이 아닌,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가는 재교육까지 포함한다. 이 교육은 단순히 더 많은 사역을 양적으로만 더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을 사역에 동참시키는 것, 즉 확장하는 복음 사역에 대한 것이다.

이렇게 장로들이 사역의 원칙을 배울 때, 자신의 약점 및 교회에 도움이 필요한 시점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어 유리하다. 일례로 우리 교회의 규모가 커져 감에 따라 사역팀을 관리하고 기능적 지원을 개발하기 위한 도움이 필요했을 때, 나는 장로들과 전문적 지식을 지닌 리더들과 젊은 사역자들의 도움을 받았다(교회의 규모가 사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팀 켈러가 쓴 “리더십과 교회 크기 역학”[Leadership and Church Size Dynamics]이라는 소논문과 레이

에반스의 책 『준비하다, 안정되다, 성장하다』[Ready, Steady, Grow]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최근에 나는 개인적으로 매우 존경하는 다른 교회 목사님께 내 비공식적인 코치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스포츠 세계에서 배워야 할 점이 있다면 분명 코칭의 중요성일 것이다. 대개 초등학교 팀은 한 명의 코치를 두고, 구단인 경우에는 여러 명의 코치가 있고, 국가대표 팀은 모든 분야에 수많은 코치를 고용한다. 이와 달리 교회는 연장자가 될수록 훈련을 받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담임목사나 장로들은 교회 내에서 막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이들이 신학적, 도덕적, 감정적으로 무너지면 교회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받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라면 다른 사람을 지도하는 것처럼 자기 자신도 반드시 지속적으로 지도받기 위해 애쓰고 힘쓰고 노력하는 리더가 되기 바란다(대학 강의나 각종 콘퍼런스에 참여하는 것도 좋고, 선배 사역자에게 멘토링을 받는 것도 좋다).

우리는 ‘훈련받은 이가 또 다른 하나님의 백성을 훈련하며 교회가 성장한다’는 바울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